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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길에서 만난 하이데거가 건네는 이야기

작성자: 쭈미렐라

조회: 417 등록일: 2021-03-03

공허함과 무기력으로 활기에 대한 갈증이 깊게 느껴질 쯔음 만나게 된 하이데거와 리딩 멤버들과의 만남은 짧은 시간이었지만 단비와 같은 시간이었다. 모처럼 쉬는 날인 오늘, 따스한 햇살을 바라보며 문득 바다가 생각났으나 한번 시작한 베란다 청소는 좀처럼 끝나지 않고 있었다. 전혀 눈치 채지 못하고 있었는데 베란다의 깊숙한 안쪽에 자리 잡고 있던 이름 모를 화초에 노오란 종 모양의 꽃이 수줍게 피어 있었다. “어머, 네가 거기서 이렇게 수줍게 네 존재를 알리고 있는 걸 몰랐네. 봄은 봄이구나.”조심스럽게 꽃을 살피며 잎을 정리해주고 거름을 뿌린 후 갈증이라도 느낄까 물을 뿌려주었다. 조심스럽던 마음엔 미안함이 더 크게 자리 잡고 있었으리라. 성근 잎 사이 초록 봉우리를 뚫고 노랗고 여린 꽃잎을 터뜨릴 때 까지 모르고 있던 무심함이 말이다.  코로나 19 가 대유행하던 2020년 등장한 신조어 중 업글 인간이라는 말이 있다. 업글 인간이란, 단순한 성공이 아닌 성장을 추구하는 자기 개발형 인간들을 이르는 말로, 타인과 경쟁해 승리하기 위한 단순한 스펙을 축적하는 것이 아닌, 삶 전체의 질적 변화를 추구하는 것은 물론 어제보다 나은 나를 만들어 나가려는 사람들을 뜻한다고 한다. 2020년 10대 신조어에 들 만큼 트랜디한 신조어로 코로나와 함께 새롭게 떠오르고 있는 밀레니얼세대의 주요 특징이라는 말에 곰곰 생각에 빠져들게 된다.  코로나 이전의 욜로족(지금의 행복에 가치를 두는 것), 파이어족(일찍 경제적 자유를 얻어 조기 퇴직하여 즐기는 것.)은 단순한 행복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다면 업글인간에는 “자기 성장”에 그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코로나로 인해 사회적 거리두기가 지속되는 가운데 고립된 삶을 살아가며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타인에게 향하던 에너지를 나로 향하며 자기 자신의 발전이나 성장에 집중하게 되는 것 같다.  하이데거는 그의 책에서 존재에 대한 이야기를 열며 톨스토이의 이반일리치의 죽음을 예시로 들면서 죽음을 맞이하는 우리 인간들의 모습을 그려 넣었다. 남부럽지 않을 만큼 부유하고 성공적인 삶을 살았던 이반리치는 갑작스럽게 죽음에 직면하게 되고, 그 직면을 통해 깊은 불안과 우울의 고통에 빠져들게 된다. 그에게 있어 죽음은 모든 것의 상실이며 단절이기 때문이다. 아니 박탈이라는 말이 더 어울릴 것이다. 이러한 이반일리치의 모습은 우리 모두의 모습이며 나의 모습이기도 하다. 행복한 것, 더 나은 것. 더 편리한 것들을 추구하는 끝없는 인간의 진화는 근대에 이르며 결국 인간은 인간 자신의 힘 외에는 무엇도 믿을 수 없게 될 만큼 교만하고 오만해져버렸으며 모든 존재들로부터 스스로를 소외시켜 버렸다. 결국 인간은 자신들의 세상을 풍요롭게 돌아가게 하기 위해 인간의 에너지(노동력)을 가장 중요한 재료로 여기게 되며 현대 사회의 주체는 인간 개개인이 아니라 인간이 에너지를 제공하고 그에 대한 반대 급부로서 총족과 욕구의 확대를 제공받는 익명의 물화체계가 되어 버렸다. 이러한 체계는 현대 사회의 곳곳에서 병든 모습으로 여실히 드러나며 “들길”로 돌아갈 것을 촉구하고 있다.  현대 사회에서 인간은 그들이 세상을 향해 그러했듯이 인간에게 더 이상 존재자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도구로서 그 소임을 다하면 소멸하는 소모품이 되어버렸다. 그러한 세상에서 난무하는 것은 폭력과 파괴일 뿐이다. 인간은 더 이상 주체가 아니라 소모품일 뿐이며 이 세상의 모든 존재자 전체와의 유대를 상실하였다. 같은 맥락에서 에리히 포름은 “현대 사회에서 우리가 보는 소외는 거의 전면적이다. 사람의 일, 소비하는 물건, 국가, 동료, 그리고 자기 자신과의 관계 속에도 파고들어 있다.”라고 하였다.  서두에서 언급했던 신조어 업글 인간이 라는 말은 결국은 자신에 대한 소외감으로부터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고 가치를 부여하고자 하는 본능적인 움직임이지 않을 까 한다. 코로나 시대를 맞이하며 소소한 경악을 경험하고 비로소 자신을 찾아가는 모습으로 나에게 비춰졌다. 하이데거가 말했던 모든 존재들, 우리 인간들이 상실했던 존재자들과의 근원적 친밀함을 다시 회복하고 경이로움을 경험하기에는 아직 머나먼 이야기이지만 말이다.  어려운 책이지만, 함께 책을 읽고 나누며 이해할 수 있게 된 부분들이 많았다.책과의 만남은 이미 오래 전부터 끝없이 질문해오던 존재나 정서에 대해 어떻게 느끼고 바라보아야 할지 그 자세를 알려주는 만남이라 좋았으며, 더 깊이 사유할 수 있는 계기가 되어 무엇보다 좋았다. <o:p></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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